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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たな学校づくりに向けて 2024 vol.7」

2024.02.22 理事長コラム

 

〜日本国内の教育の深刻な問題 ~その7〜

                              白頭学院 建国幼小中高等学校 

                                    理事長 白川重雄

【人生100年時代−6】

アンニョンハセヨ。

「自由って何?」を考える時に、ある記事が私に大きなヒントを与えてくれました。

<自由とは〜2〜>

それは哲学者の苫野一徳先生の記事です。

*苫野一徳先生(熊本大学教育学部准教授博士(教育学)。哲学者・教育学者。熊本市教育委員会委員。多様で異質な人たちが、どうすれば互いに了解し承認しあうことができるかを探究。著書多数)。

苫野先生。

『ひと言で言えば「全ての子どもたちが自由に生きられる力を育むため」に公教育は存在しています。ここで言う自由とは、「生きたいように生きられる」ということです。自分が自由に生きるためには、他者の自由も認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れを「自由の相互承認」と言います。お互いに自由な存在であることを認め合う、この「自由の相互承認」の感度を育む。これを土台にして、自由に生きられる力を育むのが公教育の本質だと、哲学的には言うことができます。』

『大阪の黒染め強要事件※をはじめとして、理不尽な校則が人権侵害であるとの認識が強まってきたことが1つの理由かと思います。なお、理不尽な校則は「ブラック校則」と呼ばれることもありますが、この言葉は人種差別への配慮に欠けるので私は使いません地毛証明を出させたり、性的指向に対する配慮が欠けていたりするなどの校則は人権侵害であるため、行政の責任で、すぐに廃止すべきです。』

※2017年に大阪の高校で生徒が生まれつき茶色い髪の毛を黒く染めるよう教師から繰り返し強要されて、不登校になった事件。損害賠償を請求する裁判も行われている。

『教師は「自由の相互承認」をこそ教えるべき存在です。それはつまり、他者の自由を侵害しない限り、どんな人種だろうが、宗教だろうが、ましてやどんな髪型や服装をしていようが、対等な存在として認め合うことを教えるということです。実際、学校では「人を見た目で判断しない」と教えていますよね。だから先生だって、教師の仕事の本質からすれば、もう少し自由な格好をしていいはずなんです。もちろん、公序良俗やTPOは考えないといけませんが。建前が慣習化すると、おかしいと思っても声を上げることが極端に難しくなってしまいますよね。自縄自縛に陥ってしまうんです。問題提起しても拒否されるだろうな、面倒くさいことを言われるのはイヤだな、と思っているうちに、いつの間にか自分も染まってしまったり。』

いじめや不登校、勉強についていけず落ちこぼれてしまうといった現象の根本にある問題の本質は、「みんなで同じことを、同じペースで、同じようなやり方で、同質性の高い学年学級制の中で、出来合いの問いと答えを勉強する」という、150年ほとんど変わってこなかったベルトコンベア式の公教育システムにあります。みんなで同じことを同じペースでやれば、構造上、落ちこぼれてしまう子ども達は当たり前に出てきます。学年学級制は、効率良く教育を与えるために、150年前にイングランドで開発されましたが、同質性の高い集団では、相互承認より、相互牽制や相互嫌悪が育まれやすく、空気を読み合うことが起こりやすい。現代の公教育の問題の根のほとんどは、このシステムにあるというのが、私の考えです。

自由が大切といっても、何もかもを自由放任にすべきだ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教育においては、「どのような条件を整えれば、子どもたちは自由を活かして自律的な人間へと成長していくことができるか」ということを考慮するのが大切になります。

具体的には、子どもに「あなたは守られている」「あなたの存在は承認されている」というメッセージを伝えること、子どもたち自身の「自分はこうしたい」という声が聞かれることなどが重要な条件です。学校の運営においても、民主主義的な議論においても、そうした「条件を整える」ということが不可欠なのですが、このことは失念されてしまいがちです。

ここで注意したいことは、「自由の相互承認」は、(「個々人が自分のわがままな自由を追求する」のではなく)「すべての人が自由になるためにはどうすればいいか」ということを重視する考え方だということです。たとえば校則を自由にしていく過程の中で、もし一部の生徒がかえって不自由になるならば、その状況を是正することもセットで考える、という発想も「自由の相互承認」には含まれているのです。

今回は苫野先生の記事ばかり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が、「自由の相互認証」の話はとても勉強になりました。前回の世界人権宣言も、こういう事が明記されているんだなと改めて感心しました。大人が子どもに「自由」を与えたがらないのは「好き勝手してわがままになる」「事の分別がつかなくなる」という理由が多いと思います。また「自由」を与えると「いじめたり、いじったりする事が増える」ということもあるでしょう。しかし苫野先生の「自由の相互認証」の捉え方を見ていると、「同調圧力をかけ、自由を与えず、束縛し、縛るからこそ不登校やいじめが増える」という事がよくわかります。たぶん、これが日本の社会を覆い尽くしているように感じます。「みんなと同じなら安心」この一言に全てが表されているように思います。

私自身も、人生において「自由とは何か」を「当事者として」考える授業も受けなかったですし、そんなキッカケもありませんでした。つまり我々大人が「自由」についての教育を受けてこなかった為に、今の日本社会全体が「自由を見失っ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さらに言えば「自由」という言葉にがんじがらめにされ、かえって「不自由」になっ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参照1

https://www.sentankyo.jp/articles/bc0a5203-e54a-4d20-8253-34f5f4990bad

*参照2

https://i-voce.jp/feed/2278359/

학부모님 귀하

새로운 학교 만들기를 향해서 2024

일본 국내 교육의 심각한 문제7

2024년 2월 22일

백두학원 건국유초중고등학교

이사장 백운중(시라카와 시게오)

【인생 100년 시대-6】

안녕하세요.

‘자유가 뭐야?’를 생각할 때 한 기사가 저에게 큰 힌트를 주었습니다.

<자유란~2~>

그것은 철학자 토마노 잇토쿠(苫野一徳) 선생님의 기사입니다.

*토마노 잇토쿠 선생(구마모토 대학 교육학부 준 교수 박사(교육학). 철학자 · 교육학자. 구마모토시 교육위원회 위원.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서로 잘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을까를 탐구. 저서 다수).

토마노 선생님.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아이들이 자유롭게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 공교육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살고 싶은 대로 있다‘라는 것입니다. 내가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자유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자유의 상호 승인‘이라고 합니다. 서로 자유로운 존재임을 인정하는 이 「자유의 상호 승인」의 감도를 기른다. 이를 토대로 자유롭게 있는 힘을 키우는 이 공교육의 본질이라고 철학적으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오사카의 검은 머리 염색 강요 사건 ※을 시작으로 불합리한 교칙이 인권 침해라는 인식이 강해져 이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불합리한 교칙은블랙 교칙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말은 인종 차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에 저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지모 증명을 내게 하거나 성적 지향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어 있는 등의 교칙은 인권침해이므로 행정의 책임으로 즉시 폐지해야 합니다.”

※2017년에 오사카의 고등학교에서 학생이 선천적으로 갈색인 머리카락을 검게 염색하도록 교사로부터 반복적으로 강요받아 등교거부를 당한 사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재판도 진행 중이다.

“교사는 자유의 상호 승인을 가르쳐야 존재입니다. 그것은 즉,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어떤 인종이든, 종교든, 하물며 어떤 헤어스타일이나 복장을 하고 있든 대등한 존재로서 서로 인정하는 것을 가르친다는 입니다. 사실 학교에서는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도 교사의 일의 본질로 보면 조금 더 자유로운 모습을 해도 좋을 것입니다. 물론 공서양속이나 TPO는 생각해야 하지만요. 표면이 관습화되면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목소리를 내는 것이 극단적으로 어려워져 버립니다. 자승자박에 빠져버립니다. 문제 제기를 해도 거부당하겠지, 귀찮은 소리를 듣는 것은 싫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샌가 나도 물들어 버리거나.”

왕따나 등교거부,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고 낙오되어 버리는 현상의 근본에 있는 문제의 본질은 ‘모두 같은 것을, 같은 페이스로, 같은 방식으로, 동질성이 높은 학년 학급제 안에서 완성된 물음과 대답을 공부한다라고 하는 150 거의 변하지 않은 컨베이어 벨트식의 공교육 시스템에 있습니다. 모두 같은 일을 같은 페이스로 하면 구조상 낙오되어 버리는 아이들은 당연히 나옵니다. 학년 학급제는 효율적으로 교육을 하기 위해 150 잉글랜드에서 개발되었는데 동질성이 높은 집단에서는 상호 승인보다 상호 견제나 상호 혐오가 자라기 쉽고 눈치를 보는 일이 일어나기 쉽다. 현대 공교육 문제의 뿌리는 대부분 시스템에 있다는 것이 생각입니다.

자유가 중요하다고 해서 무엇이든 자유방임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에 있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추면 아이들은 자유를 활용해 자율적인 인간으로 성장해 있는가라고 하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구체적으로는 아이에게너는 보호받고 있다’ ‘너의 존재는 인정받고 있다라고 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 아이들 자신의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라고 하는 소리가 나오는 등이 중요한 조건입니다. 학교의 운영에 있어서도 민주주의적인 논의에 있어서도 그러한조건을 갖춘다라고 하는 것이 불가결하지만 이것은 잊어버리기 십상입니다.

여기서 주의하고 싶은 것은 자유의 상호 승인 (‘개개인이 자신의 제멋대로인 자유를 추구한다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라고 하는 것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교칙을 자유롭게 나가는 과정 속에서 만약 일부의 학생이 오히려 불편하게 된다면 상황을 시정하는 것도 함께 세트로 생각한다라고 하는 발상도자유의 상호 승인에는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토마노 선생님의 기사뿐이지만 ‘자유의 상호 인증’의 이야기는 매우 공부가 되었습니다. 지난번 세계 인권 선언도 이런 것이 명기되어 있구나 하고 다시 한번 감탄했습니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마음대로 해서 버릇이 없어진다’, ‘일의 분별을 못 하게 된다’라는 이유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또 ‘자유’를 주면 ‘괴롭히거나, 놀리는 일이 늘어난다’라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토마노 선생님의 ‘자유의 상호 인증’을 보는 방법을 보면 ‘동조 압력을 가해 자유를 주지 않고, 속박하고, 제한하기 때문에 등교거부나 괴롭힘이 증가한다’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이것이 일본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모두와 같다면 안심’ 이 한마디에 모든 것이 표현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자신도 인생에 있어서 ‘자유란 무엇인가’를 ‘당사자로서’ 생각하는 수업도 받지 않았고, 그런 계기도 없었습니다. 즉 우리 어른들이 ‘자유’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의 일본 사회 전체가 ‘자유를 잃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덧붙여 말하자면 ‘자유’라는 말에 얽매여 오히려 ‘부자유’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참조1

https://www.sentankyo.jp/articles/bc0a5203-e54a-4d20-8253-34f5f4990bad

*참조2

https://i-voce.jp/feed/2278359/